“나는 전학생 관심 없어. 더군다나 우리 반도 아니잖아.”
사립노기자카학원 2학년, 시라이시 마이는 지금이라도 당장 타임머신을 만들어 일주일 전의 자신에게 돌아가 머리에 꿀밤을 쥐어박으며 저 말을 취소하라고 하고 싶었다.
먼지가 공기 위에서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시라이시의 머리카락에 달라붙어도 얼음 위 스케이트날처럼 바로 미끄러져도 당연하다고 말할 것 같음 별이 총총 박힌 밤하늘을 닮은 검은 머리. 그와 반대되는 햇빛보다 더 빛날 새하얀 피부. 그 위를 아름답게 수놓는 이목구비. 시라이시의 얼굴을 이보다 더 지나치지 않게 적당히 설명할 말은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얼굴은 마치 꽃밭에서 화려하고 향기롭게 자신을 뽐내는 꽃과 같다. 언제나 그 주변은 벌이 가득할 테니. 17년 동안의 시라이시의 짧은 인생은 늘 그랬다.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그저 앉아만 있어도 누군가가 늘 말을 걸어줬고, 혼자 있을 틈이 없었다. 혼자라는 말과 시라이시는 별개의 단어 같았다. 시라이시라는 세계라는 혼자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물론 모두가 그녀에게 호의적이었던 건 아니다. 시라이시가 하지도 않은 가시 돋친 말을 했다며 떠들어대는 인간도 있었다. 10퍼센트의 비호감이 90퍼센트의 호감을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이 공식이 시라이시 개인에게 통하는 말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시라이시 마이라는 인간은 남에게 관심이 없었다. 수많은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오가는 완충제 없는 감정충돌은 그녀에게 있어서 바위 치기를 할 수밖에 없는 계란처럼 괴로운 일이었다. 사람들은 단지 시라이시가 예쁘게 생겼다는 이유로 멋대로 기대하고 다가오고, 시라이시가 그만큼의 애정을 돌려주지 않으면 멋대로 실망해서 떠나갔다. 시라이시도 마음먹고 나름대로 노력해서 그 감정에 일대일로 보답하려고 했으나, 그녀 한 사람에게 쏟아지는 감정은 그녀가 지칠 때마다 올라가서 바라보는 옥상의 은하수만큼 그 양을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녀가 되돌려주는 감정을 오로지 자기 기준에서만 생각했다. 사탕을 찾는 어린아이처럼 한번 되돌려 받은 감정을 보채기만 했다. 그 이후로 시라이시는 누구에게도 자기감정을 멋대로 꺼내서 보여주지도, 함부로 드러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면 아무도 자신에게 감정의 보답을 요구하지 않을 테니까.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호의 그 이상은 언제나 거절해왔다. 좋아하지 않고, 좋아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녀가 유일하게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법이다.
“너, 나랑 친구 하자.”
“네...?”
“난 너랑 우선 친구가 되고 싶어.”
시라이시는 대답은 듣지도 않고 그대로 옆 교실의 뒷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복도를 무작정 달렸다. 계단이 보이면 내려갔다. 문이 보이면 열었다. 실내화에 모래를 밟는 감촉이 느껴지자 그제야 시라이시는 숨을 한번 크게 몰아쉬었다. 그리고 조그맣게 몸을 웅크리고 쪼그려 앉았다. 바닥에는 시라이시가 뛰어온 길을 따라 모래먼지가 일고 있었다. 모래 먼지는 시라이시의 이마로부터 떨어지는 땀방울로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한 거지…….”
전학생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금방이라도 눈물이 툭툭 떨어질 것 같은 눈망울이 시라이시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사람을 초면에 판단하면 안 되지만, 꽤 소심해 보이던 그 전학생이 자신이 나간 이후로 받았을 쏟아지는 주목을 상상만 해도 시라이시는 당장이라도 전학생 앞에서 무릎이라도 꿇고 사죄해야 마땅했다. 그만큼 충동적이었다. 본인조차도 멋대로 움직이는 발걸음과 입술을 막을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일을 저지르고 난 다음이었다.
이름조차 물어보지 못한 전학생의 얼굴을 보자마자 시라이시는 전학생이 마음에 들었다. 그냥 마음에 들었다. 관심조차 가지지 않을 거라고 타카야마와 내기까지 걸었던 주제에 감히 관심이 생겼다. 제멋대로. 이유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인데, 전생의 연인도 아니고 그런 멋진 이유 같은 거 있을 리 없었다. 흔한 열혈 만화의 주인공처럼 “친구가 되고 싶어!”라는 말이 시라이시의 머릿속과 마음을 가득 채웠을 뿐이다. 가득 채우다 못해 흘러넘치는 바람에 본인 인생에 있어서도 가장 호기로운 짓을 저지르고 말았다.
1교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지만, 시라이시는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시라이시는 이대로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느끼며 운동장 바닥에 발을 비비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시라이시의 반에서 창문이 일제히 드르륵하는 소리를 부산스럽게 내며 시원하게 열렸다. 창문 사이로 그녀의 오랜 소꿉친구인 타카야마 카즈미, 하시모토 나나미, 그리고 후카가와 마이까지 하나씩 독점하며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2학년 A반, 시라이시 마이는 어서 반으로 황급히 돌아오시길 바립니다!”
1교시인 탓에 아무도 없는 운동장에 타카야마의 목소리만 잔뜩 울려 퍼지더니 이내 메아리가 되어 한 글자, 한 글자가 시라이시의 귀에 꽂혔다. 시라이시가 벌떡 일어나 소리가 난 쪽으로 몸을 돌렸다. 타카야마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고, 하시모토는 1교시 담임이라고 써진 종이를 들고 있었고, 후카가와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어서 들어오라며 손짓하고 있었다. 시라이시가 두 손을 모아 입 근처로 옮긴 순간 타카야마의 상체가 일순간 사라지더니 담임이 시라이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빨리 들어와.’라고 입 모양으로 중얼거렸다. 검지와 중지를 자신의 눈 근처를 한번 찍었다가 시라이시에게로 다시 찍은 건 덤이다.
“아, 저건 벌점이다.”
들어가자마자 담임에게 벌점폭탄을 받은 시라이시는 1교시는 노트에 칠판 필기를 열심히 따라 적는 것 같더니, 전학생이라는 단어와 ‘쪽팔려’라는 말만 한 페이지 내내 쓰기만 바빴다. 시라이시의 머릿속에는 “내가 대체 왜 그랬지”라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아마 앞으로의 그녀 인생에 있어서도 오늘처럼 멋대로 호기스럽게 내지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너, 내 친구가 돼라......”
타카야마가 오랜만에 재밌는 놀잇거리를 찾아낸 어린아이처럼 눈을 반짝 빛냈다. 창가 옆인 시라이시의 빈자리에 앉아 어깨에 팔을 얹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분위기를 내며 말했다. 손을 이리저리 휘젓더니 이내 시라이시에게로 손을 뻗었다. 시라이시는 타카야마의 손을 가볍게 내치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타카야마는 손등에 열심히 입김을 불어 놓고 있었다.
“제발…시끄러워. 카즈밍…….”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거야? 이제 와서 제2의 사춘기라도 온 건 아니지?”
“오늘 아침 우유만 먹었다고 하더니 혹시 상한 거야? 양호실 데려다줄까?”
하시모토가 시라이시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창가 옆에 기댔다. 후카가와는 상냥한 목소리로 시라이시의 이마에 손을 가져가 열을 쟀다.
“이상하다. 열은 없는데.”
“마이마이, 그러니까 사춘기라니까.”
“그 말에 나도 동감.”
“아…….”
“왜 그러시죠, 용사님?”
타카야마는 이제 시라이시를 용사님이라고 부를 작정인지, 기도하는 손 모양을 하며 시라이시에게 되물었다. 시라이시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더니 주위에 있는 타카야마, 하시모토, 후카가와와 한 번씩 눈을 마주쳤다.
“너희 전학생 이름 알아?”
“니시노 나나세라고 하던데.”
“이름 예쁘다.”
“근데 정말로 친구 하려고?”
“제발 친구만이었으면 좋겠다.”
“그 이상이어도 우린 이해해줄게. 그보다 네가 웬일이야. 너 사람한테 관심 없잖아. 우리 생일도 올해 겨우 외웠으면서.”
“심장에 찌릿하고 왔어.”
시라이시가 마치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을 눈앞에서 보는 아주 열성인 팬처럼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가슴에 모으며,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타카야마는 질색을 하며 혀를 찼다.